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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성품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충돌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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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충돌하는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많은 분들이 신앙생활을 하면서 한 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보셨을 겁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이 두 속성은 서로 충돌, 대립하지 않을까?" 특히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에 관한 구절을 읽으면서, 또는 세상의 불공정한 고통을 목격하면서 이런 질문이 떠오르곤 합니다. 오늘은 이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가끔 하나님이 공의로우신 분인지, 아니면 사랑의 하나님이신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특히 삶 속에서 고난이나 불공평한 일을 겪을 때, “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면서 이런 상황을 허락하실까?”,  “정말 하나님이 죄를 미워하신다면 왜 악한 자들이 잘 사는 걸까?”라는 의문이 떠오릅니다. 공의와 사랑, 이 두 속성은 서로 충돌하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요?

하나님의 공의는 완전한 정의

하나님의 공의(Justice)는 단순히 ‘벌을 주는 것’이나 ‘잘잘못을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거룩한 성품에서 나오는 완전한 정의입니다. 하나님은 선과 악을 정확하게 분별하시며, 악을 결코 가볍게 넘기지 않으십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씀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공의로우사 의로운 일을 좋아하시나니 정직한 자는 그의 얼굴을 뵈오리로다.” (시편 11:7)

 

하나님의 공의는 인간의 감정적 분노나 복수심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편파적이지 않으며, 어떤 상황에서도 공평하게 판단하십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의 근거가 됩니다. 하나님은 결코 악을 묵인하지 않으시며, 모든 일에는 하나님의 타당한 기준이 있습니다.

우리가 느끼는 모순의 이유

우리는 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충돌한다고 느낄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관점에서 공의와 사랑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정의'는 종종 '엄격한 처벌'과 동의어로 생각하고, '사랑'은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이해됩니다. 이런 이분법적 사고방식으로는 두 가치가 공존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예를 들면, 자녀를 키우는 부모의 입장에서 자녀가 잘못을 했을 때, 무조건 용서만 하는 것이 진정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엄격하게 이야기 해주고 벌이 필요하면 벌을 주는 것이 옳은 양육일까요? 대부분의 부모는 이 두 가지 사이에서 균형을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제 아이에게 "아빠가 왜 혼내는 걸까?'."아빠는 아빠니까. 너가 잘못된 행동을 하는것은 싫으니까 혼 내는거야. 아빠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면 너에게 하나도 관심없어"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성경에서 보는 공의와 사랑의 조화

성경을 자세히 읽다보면,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결코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두 속성은 서로를 완성시키는 관계입니다.

 

구약에서의 예시: 많은 사람들이 구약의 하나님을 '분노의 하나님'으로, 신약의 하나님을 '사랑의 하나님'으로 구분하곤 합니다. 하지만 이는 오해입니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은 끊임없이 강조됩니다.

"여호와는 자비롭고 은혜로우며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풍성한 하나님이시니라" (출애굽기 34:6)

 

동시에, 하나님은 불의와 악에 대해서는 분명한 태도를 보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공의입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악을 방치하지 않으며, 이는 궁극적으로 사랑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마치 부모가 자녀의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아주는 것이 사랑인 것처럼 말입니다.

신약에서의 완성: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완벽하게 조화를 이루는 지점입니다. 죄에 대한 공의로운 심판이 필요했지만, 하나님은 그 심판을 우리 대신 자신의 아들에게 내리셨습니다. 이보다 더 큰 사랑이 있을까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6)

일상에서 경험하는 공의와 사랑

우리의 일상에서도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함께 역사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가 잘못된 길로 갈 때 하나님의 징계를 경험합니다. 그 순간은 고통스럽지만, 그 징계의 목적은 우리를 올바른 길로 인도하기 위함입니다.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히브리서 12:6)

이러한 징계조차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관심이 없다면 그냥 내버려 두었을 테니까요. 사랑하기 때문에 바로잡아 주시는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은 십자가에서 만난다

공의와 사랑은 서로 모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십자가에서 완전하게 만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며, 죄에 대한 대가는 반드시 치러져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대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공의입니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기도 합니다. 죄인을 멸하지 않으시고, 자신의 아들을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공의가 완전히 이루어진 장소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가장 깊이 드러난 자리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공의와 사랑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종종 '관용'이라는 이름으로 모든 것을 수용하는 문화를 접합니다. 또는 반대로, '정의'라는 이름으로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은 이 두 가지의 균형을 보여줍니다.

진정한 사랑은 때로 '아니오'라고 말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특히 그 행동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해롭다면 더욱 그렇죠. 마찬가지로, 진정한 공의는 회복과 화해를 목표로 합니다. 단순한 처벌이 아닌, 관계의 회복이 하나님 공의의 궁극적 목적입니다.

우리의 응답: 균형 잡힌 신앙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조화를 이루듯, 우리의 신앙생활도 이 두 가지 속성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되 죄인을 사랑하는 마음, 진리를 굳게 지키되 자비를 베푸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특히 타인을 대할 때, 우리는 쉽게 한쪽으로 치우칩니다. 어떤 이들은 사랑만을 강조하며 모든 것을 수용하고, 또 어떤 이들은 공의만을 앞세워 정죄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두 가지 모두를 완벽하게 보여주셨습니다.

결론: 충돌이 아닌 조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두 속성은 하나님의 본질을 이루는 완벽한 조화를 이룹니다. 공의 없는 사랑은 방종으로 이어질 수 있고, 사랑 없는 공의는 냉혹함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 두 가지가 완벽하게 균형을 이룹니다.

우리가 삶에서 경험하는 하나님의 징계와 은혜, 그리고 십자가의 사건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어떻게 함께 역사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의 신앙을 더욱 깊게 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더욱 풍요롭게 만들어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은 충돌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아닙니다, 충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 두 속성은 하나님의 완전한 성품을 나타내는 조화로운 표현입니다. 우리도 이러한 하나님의 성품을 본받아, 일상에서 공의와 사랑의 균형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